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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의 풍경입니다. 일상적으로 도수가 꽤 높은 술을 곁들이는 문화 탓에 우리는 스스로를 엄청난 독주 소비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회식 자리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초록색 병들을 떠올려 보면 당연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관 OWID(Our World in Data)가 발표한 2022년 1인당 증류주 소비량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전 세계 187개국을 대상으로 집계한 이 방대한 데이터에서 한국의 위치는 과연 어디쯤일까요? 우리의 체감과는 전혀 다른, 아주 낯선 숫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37위에 머문 한국 1인당 증류주 소비량, 왜 그럴까?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증류주(독주) 소비량은 0.31리터입니다. 이는 맥주나 와인 등이 섞이지 않은 순수 증류주의 용량만을 환산한 수치인데요. 놀랍게도 전체 187개국 중에서 137위라는 꽤 낮은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국제 통계의 엄격한 주류 분류 기준과 관련이 깊습니다.
국제 보건 기구나 통계 기관들은 증류 과정을 거친 높은 도수의 술(보통 알코올 도수 40도 안팎)을 엄격하게 증류주로 분류합니다. 반면, 과거 25도에서 시작해 이제는 15~16도까지 도수가 내려간 한국의 대중적인 희석식 소주는 국제 기준에서 정통 증류주로 인정받기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
주정(에탄올)에 물을 타서 만드는 제조 방식과 낮은 도수 때문에 종종 ‘기타 주류(Other alcoholic beverages)’ 카테고리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OWID 데이터에 찍힌 0.31리터라는 수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일반 소주를 제외한 결과입니다. 수입 위스키, 코냑, 보드카, 럼, 혹은 안동소주나 화요 같은 전통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의 소비량만을 순수하게 발라낸 성적표인 셈입니다. 우리가 독주를 안 마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술이 통계표의 다른 칸에 들어가 있을 뿐입니다.
최근 추이 변화: 다시 고개를 드는 한국의 독주 그래프
한국의 2000년부터 2022년까지의 연도별 데이터를 살펴보면, 주류 소비의 트렌드 변화가 그래프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0.7~0.9리터 선을 오르내리던 수치가 2005년 0.34리터로 급감했습니다.
이는 실제 소비가 하루아침에 반토막 났다기보다는 주류 분류 기준의 깐깐한 변화나 세금 관련 통계 보고 방식이 달라진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0.2~0.3리터의 좁은 박스권에 갇혀 있던 소비량은 2020년과 2021년 역대 최저치인 0.21리터까지 떨어졌습니다.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으로 인해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단체 회식이 실종되면서, 값비싼 양주나 증류주 소비가 직격탄을 맞은 흔적입니다. 그런데 2022년 들어 이 수치가 0.31리터로 무려 50% 가까이 훌쩍 뛰었습니다.
이 반등은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위스키 오픈런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탄산수와 섞어 마시는 하이볼 유행이 번지면서 위스키 수입량이 급증했고,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찾는 소비자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의 최근 분석에서도 한국의 위스키와 고급 증류주 시장이 젊은 층의 취향 소비와 맞물려 이례적인 호황을 누렸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0.31리터라는 작은 숫자 안에 한국 주류 문화의 세대교체가 담겨 있습니다.
세계 최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
그렇다면 세계에서 순수한 의미의 독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들은 어디일까요?
1위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루시아로 무려 6.14리터를 기록했습니다. 그 뒤를 라트비아(5.95리터), 에스토니아(5.85리터), 리투아니아(5.35리터), 슬로바키아(5.1리터) 같은 국가들이 휩쓸었습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 동유럽과 발트해 연안의 전통이 상위권의 한 축을 차지합니다.
또한 사탕수수를 기반으로 한 럼(Rum)주의 본고장인 카리브해 지역의 바베이도스(4.76리터), 도미니카(4.72리터), 앤티가 바부다(4.57리터) 같은 국가들도 나란히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기후와 지역 특산물이 주류 소비 패턴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패턴입니다.
우리와 가까운 곳 중에서는 7위에 오른 북한(5.06리터)의 수치가 꽤 의외의 결과로 다가옵니다.
북한은 맥주도 마시지만, 지역마다 자체적인 곡물 증류주나 도토리를 활용한 40도 이상의 독한 술을 주로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식량 사정과 음주 문화가 통계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하위권 15개국의 지표는 그야말로 바닥에 붙어 있습니다. 소비량이 0이거나 0.01~0.02리터 수준에 불과합니다.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이란, 예멘 등 율법에 따라 음주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들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세네갈이나 소말리아, 차드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도 종교적, 경제적 이유가 겹치며 하위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소비량을 가진 국가들의 특징
한국과 비슷한 0.31리터 안팎의 증류주 소비량을 기록한 나라들은 어떤 곳들일까요?
대체로 전체적인 알코올 소비량 자체가 적은 국가들이거나, 맥주와 와인 등 발효주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서 굳이 독한 증류주를 찾지 않는 국가들이 이 구간에 분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이들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한국은 전체 알코올 소비량으로 따지면 세계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이른바 음주 강국입니다. 전체 음주량은 막대한데 증류주 지표만 유독 바닥을 기는 사례는 전 세계 187개국 통계 중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이고 독특한 케이스입니다. 세계의 기준과 한국의 일상 사이에 존재하는 이 기묘한 불일치가 통계를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저는 이 1인당 증류주 소비량 숫자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술의 지형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먼저 보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한국은 독주를 거의 마시지 않는 137위의 나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최근 몇 년 새 위스키와 고급 소주를 향해 지갑을 열며 꺾여 있던 그래프의 방향을 다시 위로 돌려놓았습니다. 분류 기준이 만든 통계의 착시가 오히려 우리 주류 문화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숫자는 현실의 단면을 비추지만, 때로는 그 프레임 밖의 진짜 일상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데이터가 보여주지 못하는 여백에 우리가 나누는 수많은 건배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의 잔을 채울 술은 세계 통계에 뚜렷하게 잡히는 정통 위스키일까요, 아니면 통계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친숙한 초록색 병일까요?
전체 순위 (상위 50개국)
| 1 | Saint Lucia | 6.1 |
| 2 | Latvia | 6 |
| 3 | Estonia | 5.9 |
| 4 | Lithuania | 5.4 |
| 5 | Slovakia | 5.1 |
| 6 | Bulgaria | 5.1 |
| 7 | North Korea | 5.1 |
| 8 | Barbados | 4.8 |
| 9 | Dominica | 4.7 |
| 10 | Antigua and Barbuda | 4.6 |
| 11 | Belarus | 4.5 |
| 12 | Thailand | 4.5 |
| 13 | 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 4.4 |
| 14 | Hungary | 4.2 |
| 15 | Mauritius | 4.2 |
| 16 | Poland | 4.1 |
| 17 | United States | 4 |
| 18 | Seychelles | 3.9 |
| 19 | Philippines | 3.8 |
| 20 | Laos | 3.8 |
| 21 | Grenada | 3.6 |
| 22 | Czechia | 3.6 |
| 23 | Mongolia | 3.5 |
| 24 | Russia | 3.4 |
| 25 | Bahamas | 3.4 |
| 26 | Montenegro | 3.2 |
| 27 | Romania | 3.2 |
| 28 | Kyrgyzstan | 3 |
| 29 | Nauru | 2.9 |
| 30 | India | 2.9 |
| 31 | Kazakhstan | 2.8 |
| 32 | Brazil | 2.8 |
| 33 | Serbia | 2.7 |
| 34 | United Kingdom | 2.6 |
| 35 | Moldova | 2.6 |
| 36 | Suriname | 2.5 |
| 37 | Saint Kitts and Nevis | 2.5 |
| 38 | Germany | 2.5 |
| 39 | Guyana | 2.5 |
| 40 | Liberia | 2.5 |
| 41 | Spain | 2.5 |
| 42 | Ireland | 2.4 |
| 43 | Andorra | 2.4 |
| 44 | Luxembourg | 2.4 |
| 45 | Haiti | 2.4 |
| 46 | Zimbabwe | 2.3 |
| 47 | Niue | 2.3 |
| 48 | China | 2.3 |
| 49 | France | 2.3 |
| 50 | Cuba | 2.2 |
📊 자료 출처: OWID · 2022년 기준 데이터